방학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권리

일러스트 by 정혜림

 이번 학기부터 일상 속 대학생들의 불만을 기자의 시각으로 풀어내는 고정란 '불만백서'가 연재됩니다    
  리포트와 각종 조별과제, 계속되는 술자리와 시험으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한 학기가 끝나고 방학이 시작되면 괜히 마음이 설렌다. 늦잠도 자고 그 동안 못 봤던 만화책과 드라마도 실컷 봐야지... 게으른 한량처럼 살아야지... 했는데 막상 방학이 시작되니 푹 쉬는 게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다. 누군가에게 방학동안 “아무 계획 없는데” 라거나 “푹 쉴거야”라고 말하면 마치 별 생각 없이 인생을 사는 게으른 인간취급을 받게 된다.
  사전에 의하면 방학의 한자는 放學, 놓을 방에 학문 학 자다. 직역하면 학문을 손에서 놓는 기간, 즉 공부를 잠시 쉬는 기간을 의미하는 거다. 근데 대체 왜 주변 사람들은 전부 방학계획을 거창하게 세우는지. 생각해보면 언제부터인가 우리사회는 방학을 언제나 평소에 할 수 없었던 무엇인가를 거창하게 계획하고, 실천하는 기간으로 여기고 있다. 토익학원에 등록하거나 배낭여행을 떠나거나 하다못해 아르바이트라도 하지 않으면 생각 없는 사람으로 취급당하기 일쑤다. 방학동안 자꾸만 무엇인가를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는 분명히 문제가 아닌가? 도대체 왜 황금 같은 방학동안 남의 눈치때문에 별로 하고 싶지도 않은 무언가를 꾸역꾸역 계획해서 억지로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건지.
  왜 우리사회는 자꾸만 방학동안 우리에게 뭔가를 계획하고 실행하기를 바라는 걸까?  자세히 살펴보면 여기에도 팍팍한 우리사회의 모습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것 같다. 계속되는 불황에 덩달아 힘들어지는 취업. 우리가 주위에서 내내 보고 듣는 것이라고는 누구는 노량진에서 취업준비를 한다더라, 또 누구는 방학동안 회화 학원을 다닌다더라  하는 것뿐이니 방학동안 뭔가를 안 하면 남에게 뒤처지는 기분이 드는 게 당연지사. 앞서갈 수는 없어도 남들 다 하는 건 해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에 맞춰 꾸역꾸역 계획을 짠다. 그리고 우리사회는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이런 것들이 마치 성실함의 상징인양 부추긴다. 하고 싶으면 각자 알아서 하면 될 텐데 다수가 하는 대로 안 하는 이들에게 눈을 흘기는 건 무슨 심보인지.
  물론 알찬 방학을 보내기 위해 방학 전부터 꼼꼼히 계획을 짜는 사람도 있겠지. 부족한 공부를 메우고자 일찌감치 학원에 등록하는 학구열에 불타는 학우도 있을 것이고, 방학이 되면 여행을 가려고 몇 달 동안 꼬박꼬박 돈을 모아온 학우도 당연히 있을 거다. 방학동안 뭔가를 계획하고 실천하는 건 모두 개인의 자유니까.
  이때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는 게 하나 있는 듯 싶다. 이 선택의 자유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권리’도 포함된다는 거다. 방학 내내 드라마에 빠져 살았다고 해서 시간을 낭비했다며 자책할 필요가 있나. 내가 쉬겠다는 데 주위에서 도끼눈을 뜨고 쳐다보면서 이래저래 왈가왈부 하는 것도 웃기다. 편히 쉬고 즐겁게 놀았다면 그 사람은 나름대로 괜찮은 휴식시간을 보낸 셈이니까. 지친 내 마음을 힐링하는 데 시간을 썼다고 해서 그게 낭비는 아닐텐데. 다음 방학때는 “아무런 계획도 없다”고 말하는 친구에게 그냥 “그러니”라고 답해주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 겨울방학이 끝나가는 요즘, 기자가 바라는 작은 소망이다.
 

송송이 기자 
song00130@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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