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OECD가 발표한 ‘2050년 환경전망’ 보고서에는 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대한민국이 물 부족 국가로 조사됐다. 물 부족 국가는 사용 가능한 수자원 중 실제 사용 비율이 40%를 넘을 경우에  분류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1인당 연 강수량은 부족한데도 불구하고 1인당 물소비량은 275리터로 영국(139리터), 프랑스(232리터)보다도 훨씬 많은 수준이다. 40%를 초과하는 물 수요 비율을 놓고 보면 우리나라는 가히 물 수요 초호화 국가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물 중에서 대부분의 물은 실제 사용하는 물이 아닌 우리가 모르게 쓰이는 물이다.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수(水), 가상수다.

  상상을 초월하는 가상수 소비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여러 분야에서 보이지 않는 물이 사용되고 있다. 이를 가상수라 하는데 가상수란 제품 및 서비스의 생산에 사용되는 직·간접적인 물의 총량이다. 말 그대로 먹고 마시는 음식, 옷, 스마트폰까지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것들을 생산하는데 소비되는 물의 양을 의미한다.
  이러한 가상수가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양은 엄청나다. 우리나라의 경우 1인당 가상수 사용량은 1억6천만리터로 세계 평균 1억3천만리터보다 많은 편이다. 뿐만 아니라 전체 가상수 사용량의 해외 의존도는 78.1%로 세계 5위의 가상수 순수입국에 해당된다.
  예를 들면 아침식사 때 우리가 마시는 커피 한 잔에는 보통 0.3리터에서 0.4리터의 물이 들어간다. 하지만 한 잔의 커피를 마시는데 드는 가상수는 무려 140리터로 무려 수백 배가 넘는 양이다. 가상수에는 커피 한 잔을 만들기 위해 커피콩을 재배하고 수확해 유통을 거쳐 최종 소비될 때까지 들어가는 모든 물의 양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물 연구 권위자로 통하는 런던 킹스칼리지 대학의 토니 앨런 교수는 “사과는 70리터, 달걀은 120리터, 우유 한 잔은 240리터, 베이컨 1인분은 480리터의 가상수가 소모된다”며 “커피와 토스트, 베이컨과 달걀, 우유, 과일로 차린 간단한 아침 식단에서조차 자그마치 욕조 세개 분량에 달하는 물이 쓰인다”고 밝혔다.
  식단에 따라서도 가상수 소비량은 큰 차이를 보인다. 하루 세 끼를 육식으로 먹을 경우 1인당 욕조 15개 분량의 물이, 채식식단일 경우 욕조 8개 분량의 물이 쓰인다.

  해외에서 벤치마킹하자
  전 세계적으로 물 부족 문제가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자, 선진국들은 가상수 이용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호주는 물 인프라 노후시설 개선 및 유지 관리를 위해 20억 달러를 투자비로 지출했다. 그리고 2005년부터 수도꼭지·세탁기 등의 물 관련 제품에 물 사용에 대한 표준을 제시하고 효율에 관한 라벨을 붙이도록 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 결과 기대 이상의 수자원 절약 성과를 거두었다. 또 물 수요를 줄이는 방침으로 37%의 수도요금을 인상하는 계획도 추진 중이다.
  호주 정부는 오는 2021년까지 연간 10만리터 이상의 가정 내 물 사용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싱가포르에서는 정화 처리로 재이용 하는 중수도 용수인, 일명 그레이 워터를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 가정에서 배출하는 설거지물이나 빨래 물을 바로 버리지 않고 정화과정을 거쳐 물의 순도에 따라 공업용·농업용 등으로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심지어 음료수로까지 재활용한다.
  도심에서는 그레이 워터를 도로에 뿌려 도시 매연과 먼지 문제를 해결하고 공원 연못이나 조경에 쓰는 방편으로까지 확장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세계 최대 물 부족 국가였던 싱가포르는 인접국인 말레이시아로부터 물을 수입해야 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물 자립을 달성하는 놀라운 결과를 이룩했다.

  가상수 활용, 앞으로 향방은?
  우리나라의 경우 가상수 사용량의 해외 의존도가 높은 상황이다. 한국 수자원연구원 송우진 과장은 “지금 우리나라는 재화와 함께 재화를 생산하는데 투입된 물까지 수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재화를 수입할 수 없어 자체적으로 생산해야 한다면 이로 인해 국내 물 사정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화를 수입하는 현실이 자연스럽게 가상수 사용량의 해외의존도를 증가시키는 상황을 빚게 한 것이다.
  현재 정부에서는 가상수와 관련해 국내 물 수급 상황을 조절하는 정책, 물 소비 감소를 위한 교육·홍보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OECD 회원국 중 유일한 물 부족 국가라는 불명예에서 벗기 위해 국가적 여건에 맞는 다양한 가상수 활용 연구에 몰두할 필요성이 있다.


오수민 기자
brightid@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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