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은 활발하게 교류는 친근하게"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학술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면ㆍㆍㆍ

  중국 길림성 사회과학원과 국제고려학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코리아학 소장학자 국제학술토론회」가 지난 7월 29일부터 31일까지 3일간의 일정으로 중국 길림성 안길시에서 열렸다.
  대회 참가자는 주최국인 중국, 남북한, 일본, 미국, 소련, 독일, 터키등으로부터 온 약 3백명이었고, 프로그램상에 나타난 논문 발표 신청자만도 1백90명에 달했다. 논문발표신청자 중에서 사정상 연길에 오지 못한 사람도 더러 있어서 신청자 모두가 발표를 하지는 않았지만, 비교적 규모가 큰 학술대회임에는 틀림이 없다.
  개회식과 폐회식은 전체 참여자들이 모인 가운데 진행되었지만, 논문의 발표와 토론은 분과별로 진행되었다.
  분과는 언어부회, 문학부회, 역사부회, 경제부회, 철학ㆍ종교부회, 사회ㆍ문화ㆍ교육부회, 정치ㆍ법률부회 등의 7개로 구성되었으며 각 부회의 발표자 수는 대체로 비슷했다.
  필자는 특별히 본인의 흥미를 끈 중국 길림성 사회과학원 조선문제연구소 연구원 장옥산의 「남한 공업화 및 발전 모형의 보편적 활용가능성과 제한성」(원제목을 우리식 용어로 정리한 것임)을 듣기 위하여 잠시 경제부회에 참여한 시간을 제외하고는 줄곧 제6부회인 사회ㆍ문화ㆍ교육부회에 참여하였다. 따라서 필자가 아래에 서술한 대회 참가 소감은 주로 제6부회의 활동과 관련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대회 일정에 비하여 발표논문의 수가 많아 발표와 토론은 매우 빡빡하게 운영되었다. 부회에 따라서 차이는 있었겠지만, 제6부회에서는 발표시간은 20분으로 그리고 토론시간은 5분으로 제한되었다. 열띤 토론이 전개될때 더러 토론시간을 연장하는 경우는 있었으나, 발표시간만은 엄격하게 제한하였다. 이러한 시간적 제약으로 학자 상호간의 충분한 의견 교환은 불가능했지만, 「소장학자」중심으로는 처음 열린 이번 대회에의 참가는 필자에게 대단히 유익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이번 대회가 다른 나라 학자들의 관심사를 알 수 있게 해준 좋은 기회를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제6부회에는 부회명칭에서 드러나듯이 서로 상이한 학문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필자의 전공이나 관심과 일치하는 논문들이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발표된 대부분의 논문들은 결국 「코리아」또는 우리 민족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었기 때문에 흥미를 잃지 않고 들을 수 있었다.
  제6부회에서 발표된 논문 중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한국, 미국, 일본 학자의 논문을 제외하고 중국과 북한 학자들이 발표한 논문의 성격을 개관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중국학자들의 경우를 보자. 이번에 참가한 중국학자들의 대부분은 이른바 '조선족'이었고 따라서 그 논문에 따라 매우 다양했지만, 그들의 논문도 대부분 조선족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었다. 문제의 초점은 논문에 따라 매우 다양했지만, 그들의 논문들 속에는 하나의 공통된 문제의식이 꿰뚫어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하나는 조선족이 중국 내에서 소수민족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구조적ㆍ역사적 현실에서부터 비롯된 것으로서 지배적 문화인 중국문화에의 동화와 문화적 주체성의 유지간의 긴장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조선족'은 중국의 여러 소수민족 중에서 다른 어떤 민족보다도 고유문화를 잘 보존하고 있고, 사회경제적으로도 비교적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끈질기게 엄습해오는 문화적ㆍ사회적 통합에의 요구에 휩싸여 심각한 갈등 상태에 놓여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물질적 번영의 문제였다. 말하자면 어떻게 하면 중국이 특히 조선족의 경제적으로 보다 나은 삶을 획득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그들의 대단히 중요한 관심사였다. 이른바 발전주의 이데올로기가 그들에게도 매우 넓게 자리잡고 있었다. 아마도 위로부터 추진되고 있는 개혁과 개방의 물결과 최근 빈번해진 우리 사회와의 접촉이 이러한 변화를 더욱 자극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특히 한국의 급속한 성장과 그러한 성장을 가능케 했던 요인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발표장에서 나눈 이야기는 아니지만 한 중국인 경제학자는 우리나라의 새마을 운동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표명한 다음 우리측 학자중 한 사람이 새마을 운동에 대하여 비판적인 주장을 하자 심히 실망하는 눈치를 보이기도 했다.
  여기에서 필자가 중국학자들의 발표를 들으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한 한가지 사실을 추가로 지적한다면, 그것은 그들의 논문에서 이념적인 요소는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논문의 형식적 요건처럼 되어 있는 이론적인 논의조차도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그들은 대체로 그들 사회가 안고있는 문제들을 개혁주의가 아닌 개선주의의 관점에서 이론적이라기보다는 경험적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우리쪽의 어떤 학자는 이러한 중국 논문의 특징이 그들의 실용주의적 전통과 연관된 것으로 해석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학문의 실천성의 강조는 주목할만한 것이었다.
  제6부회에 참가한 북한 학자는 주체과학원 철학연구소 연구원 동명춘 한 사람뿐이었으므로 북한 학자들 논문 일반이 갖는 특징을 말할 수는 없다. 「사람과 사회」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동명춘이 논문은 「주체철학」의 관점에서 사회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를 다룬 것으로서 필자가 보기에 매우 이론적인 동시에 사회학적인 것이었다. 발표자는 본인이 사회학자가 아니라고 했지만, 만약 북한에서 「사회학개론」이라는 교과서를 쓴다면, 제1장에 포함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제6부에는 공식적으로 사회학자임을 표방하는 사람은 필자 한 사람뿐이었기 때문에 사회학자로서의 「책무」를 느껴 짧은 시간이지만 몇가지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들었다.
  전체적으로 이번 학술대회는 주최측이 내건 슬로건대로 「토론은 활발하게 교류는 친근하게」진행되었다. 국경과 이념이 문자 그대로 초월되지는 않았겠지만 적어도 토론장에서는 진지하고 열띤 토론이 전개되기는 했지만, 불필요한 사회체제 우월성 논쟁은 전혀 없었다. 이러한 토론장 분위기가 가능했던 것은 이번 토론회에 참여한 학자들 모두가 그러한 논쟁이 자칫하면 성숙해가는 동일 분위기를 저해할 수도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토론장 바깥에서도 대회참가자 모두의 가장 큰 관심사는 남북한 학자들간의 교류였고, 모든 사람의 기대대로 「친근한 교류」가 이루어졌다. 대회 첫날 밤 숙소인 백산호텔 식당에서 있었던 연회는 남북한 출신 학자들 모두가 가지고 있었던 서먹서먹함을 떨쳐버리게 한 중요한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 주최측에서는 의도적으로 「남남」과 「북녀」가 짝을 이루어 합창으로 「우리의 소원」부르도록 유도했고, 이를 계기로 해서 연회장은 남북화해의 분위기에 휩싸이게 되었다. 남북한학자들이 어우러져 잔을 기울이면서 환담을 나누는 장면이 연회장 곳곳에서 벌어졌으며, 드디어 연회의 분위기가 무르익자 연회장 중앙공간은 어깨동무를 하고 아리랑을 부르는 사람들로 붐비게 되었다. 비록 제3국에서 몇몇 사람들간에 이루어진 교류이긴 하지만, 이러한 소규모의 교류가 계속됨으로써 남북간의 신뢰와 화해가 이루어 질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이번 학술대회를 마치면서 아쉽게 생각된 것은 이 대회가 한반도내의 서울이나 평양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한반도 주변의 일본과 중국을 차례로 돌면서 이루어질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더욱이 다음 대회도 들리는 바에 의하면 북경에서 열리게 될 것이라 한다. 남북한 학자들이 제3국을 통하지 않고 판문점을 통과하여 서울이나 평양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석할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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