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둥글게 둥글게 이영주 태어나는 순간에는 왜 나를 볼 수 없을까미래 밖에서 우리는 공을 굴린다.가장 아름다운 색깔은 안쪽에 숨겨져 있다.아픈 사람의 손바닥은 늘 빨개뜨거운 물속에 잠기면공처럼 둥글어진다.방문을 열고 천천히 마당으로 간다.까마귀의 붉은 속살이 목련 나무 아래 솟아 있다.새벽을 지나 앞발로 공을 굴리는 고양이태어나면서부터 날 수 있다면 우리는 다른 색깔을 가졌을지도 몰라모호한 시작 때문에 처음과 끝을 굴리는 우리는 - 시집 『차가운 사탕들』 中 시인은 자기 자신이 존재하기 전의 상태에서 자신을 바라봅니다. 첫 연을 보면
여론
충대신문
2020.12.04 11:28
-
정리의 계절이 왔는데도 정리가 잘 안 된다고들 말한다. 뭔가 자꾸만 일이 터져 뭐가 어디로 어떻게 튈지 종잡을 수 없다고들 말한다. 주섬주섬 하는 말들인데도 그게 한줌 가득이다. 흔히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가장 무난하고 평범한 말로 드는 게 “다사다난”이다. 물론 여기서의 ‘다사’에는 좋은 일도 포함된다. 그런데 올 해야말로 이 사자성어가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등장할 것 같다. “또 들을 수 있을까!” 싶었던 소식도 여럿이었고, 연초에 시작되어 연말까지 이어지고 있는 일들도 유난히 많았다. 전자의 한 가지 예로는 우리 영화의 아카
여론
충대신문
2020.12.04 11:24
-
-
-
-
그제 입동이 지났고, 벌써 찬바람머리에 들었다. 그런데 아직 신종 바이러스 감염증, 코로나19의 기세는 꺾이질 않는다. 지난 12월 처음으로 세상에 보고돼 퍼지기 시작했으니 이제 1년이 다 돼 간다. 그 사이 우리 사회엔 많은 변화가 일어났고, 여전히 진행되며, 그 끝도 짐작이 어려울 지경이다. 평범한 우리네 사람들은 그저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하는 일상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밥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갈 때도 출입 기록을 요구하고, 학교 건물에 드나드는 일도 일일이 다 기록해야 하는 시대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니 불편도 불편이거니와
여론
충대신문
2020.11.11 15:24
-
-
-
-
시월도 중순에 접어들었다. 추석절에 한로가 지나고 상강이 가까워졌으니 시간은 바야흐로 가을의 절정을 향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한해 중 가장 좋은 때의 하나가 바로 이즈막이다. 대학은 2학기가 시작된 지 한 달을 훌쩍 넘겼고, 곧 중간고사 기간이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의 위세는 여전해 강의실이나 실험실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험 또한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졸업이 머지않은 4학년 학생들은 취업 걱정이 클 것이고, 올해 입학한 1학년 학생들도 일찍부터 그렸던 대학생활이 난망해 더러 취업 준비에
여론
충대신문
2020.10.13 11:58
-
-
-
밤의 섬 밤이 허물어져, 화려히 질고 짙은허술한 밤이나는 죽어 누워있어요 땅이 나에게 꽃노래를 불러준다네 가장 쇠의 성질을 지닌 꽃노래기다랗고 하이얀 손가락을 뻗어 노래의 음표에 손이 베였을 때살들은 부서지고새파란 날선 시간이 무거워땅으로 갔다네저 부드러운 흙만이 내 마음을 알아사나운 표정을 접어두고 어두운 섬으로 걸어가는 나꽃이 피던 날 나는 또 다른나를 만났어어제의 너는 어디에 있어?섬으로 가는 배표를 잃어버린 마음이 바닷물처럼 넘쳐서유괴당한 꿈으로 머리를 땋고 있었지나의 울음은 깜깜한 거울처럼보이지 않아내 일부가 묻힌 섬에서하
여론
충대신문
2020.10.13 11:50
-
-
가을이다. 가을을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말조차 한적한 정자의 처마 밑에 낀 이끼처럼 박제되는 중이다. 그런데 한가위도 그럴 것 같다. 한가위의 정경이 고색창연하게 다가 올 시대가 머지않았다는 느낌이 드는 요즈음이다. 확실히 올해는 예년과는 다른 모습이다. 무엇보다 거리의 한가위 현수막이 줄거나 거의 보이지 않는다. 향우회나 청년회 명의의 혹은 누구누구 의원이니 무슨 장이니 하는 이들이 내건 현수막이 골목마다 걸려 한가위의 분위기를 한껏 띄워주곤 했는데 그마저도 사라져 오히려 세시(歲時, observance)의
여론
충대신문
2020.09.23 10:35
-
-
-
슬픔의 자전 신철규 지구 속은 눈물로 가득차 있다타워팰리스 근처빈민촌에 사는 아이들의 인터뷰반에서 유일하게생일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아이는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타워팰리스 근처를 둘러싸고 있는낮은 무허가 건물들초대받지 못한 자들의 식탁그녀는 사과를 매만지며오래된 추방을 떠올린다그녀는 조심조심 사과를 깎는다자전의 기울기만큼사과를 기울인다칼을 잡은 손에 힘을 준다속살을 파고드는 칼날아이는 텅 빈 접시에먹고 싶은 음식의 이름을손가락에 물을 묻혀하나씩 적는다사과를 한 바퀴 돌릴 때마다끊어질 듯 말 듯사과 껍질그녀의 눈동자는우물처럼 검고 맑고
여론
충대신문
2020.09.23 10: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