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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침투작전 클리셰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말로 ‘전형적인 것’ 정도가 되겠네요. 첩보영화에선 지령을 내리는 수뇌부가 “자~ 선수 입장” 과 같은 말도 안 되는 대사를 치는 것도, 로맨스 영화에서는 부스스하던 주인공이 멀끔하게 차려입고 재회하는 것도, 스릴러에서는 제일 말 안 듣는 사람이 먼저 죽는 것도 다 일종의 클리셰입니다. 그렇다면 8월의 클리셰는 무엇일까요. 더운 날씨, 내리쬐는 태양. 다름 아닌 여름이죠. 그리고 여름하면? 바다를 떠올리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강이라고 대답하신 분들은 조용히 신문을 덮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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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대신문
2023.09.08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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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운 스무 살이 반갑지 않았다.” 트라이비(Tri.be) 송선의 데뷔 과정이 담긴 동아일보 기획 기사 은 이렇게 시작한다. 송선은 연습생 5년 차에 스무 살을 맞이했다. 고등학교 졸업식에선 이미 데뷔해 유명해진 학생들이 포토월에 서서 기자들의 플래시 셔터를 받았다. 학교를 빛냈다며 공로상을 받는 그들을 단상 아래에서 바라보던 연습생의 감정은 어땠을까. 여전히 데뷔는 불투명했고 신인들의 나이는 갈수록 어려지기에, 스무 살은 반가울 수 없었을 것이다. 어려운 연습생 생활을 이겨내며 데뷔 조에 들어도 투자 자금이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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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대신문
2023.09.08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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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언니 김희준 유채가 필 준비를 마쳤나봐 4월의 바람은 청록이었어 손가락으로 땅에 글씨를 썼던가 계절의 뼈를 그리는 중이라 했지 옷소매는 죽어버린 절기로 가득했고 빈틈으로 무엇을 키우는지 알 수 없었어 주머니에 넣은 꽃잎을 모른 체 했던 건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 박음질이 풀릴 때 알았지 실로 재봉된 마음이었다는 걸 의사는 누워 있으라 했지만 애초에 봄은 흐린 날로 머무는 때가 많았지 벚꽃과 유채가 엉킨 들판에 어린 엄마와 어린 언니가 있어 놀이기구가 안개 속에 숨어 있었던 거야 숨바꼭질을 좋아하던 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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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대신문
2023.06.01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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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대학교 재학생 여러분이라면 다들 아시겠지만 전공, 입학전형을 막론하고 모두가 들어야하는 수업이 있습니다. 필수교양이라고도하죠. 그 중 하나가 대학영어입니다. 고학번 분들에게는 GLOBAL ENGLISH로 알려진 그 과목이죠. 보통은 나중에 변수가 생기는 걸 피하고자 1학년 1학기, 늦어도 2학년으로 넘어가는 계절학기 안에는 들어두는 게 일반적입니다. 네, 저는 좀 특이한 놈인가 봅니다. 대학영어는 시작부터 범상치 않았습니다. 지난 3월, 저는 첫 수업을 앞두고 긴장했습니다. 길을 잃었거든요. 대체 새내기도 아닌 20학번이 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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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대신문
2023.06.01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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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감을 사려면 기억해야 한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그가 좋아하는 얼그레이 케이크를 사서 건네는 것은 마음을 전하는 지름길이다. 단축키를 외우기 위해 한동안 왼손을 허둥거려야 하는 것처럼, 다정하는 일은 마음에 인이 박이는 행위이다. 그리고 말썽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생한다. 습관을 형성할 때가 아니라 고쳐야 할 때. 너와 나는 너무 달라서 문제라는 말에 내가 공감하는 방식은 피그마와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를 동시에 사용하는 것이다. 알트와 컨트롤을 분간할 수 없게 될 때, 내 새끼손가락이 누르는 키가 내 의지를 벗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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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대신문
2023.06.01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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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봄 잡아라 김혜순 봄이 엄마를 데려간다 나는 여기 있는데봄이 엄마를 데리고 간다 봄이 오면 가만히 서 있던 나무들에게도 이름이 생긴다 꽃이 피면 그 나무의 이름을 불러준다... 엄마의 소녀 적 소녀들은 쌍쌍으로 찻집에 들어가고애도는 죽음보다 먼저 태어나꽃 피는 대궐의 문을 여는데봄은 죽음의 계절흰 눈 위의 흰곰을 병 속에 밀봉하는 계절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는 게 있다봄이 꽃들로 만든 포대기처럼 엄마를 데려간다저 봄 잡아라나는 눈을 가린 사람처럼 두 손을 휘젓는다...꽃 피면 안 돼그 누구도 안 돼주문을 외운다 시집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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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대신문
2023.04.20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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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런 거 안 팔아유 때는 약 4년 전, 저는 친구와 붕어빵을 나눠 먹으며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저녁 시간이 되었음에도 끼니는 때우지 못했고 손에 들린 건 붕어빵뿐이었습니다. 붕어빵을 비하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나 혈기 왕성한 20대 청년 두 명을 배불리 먹이기엔 붕어빵은 어딘가 모자란 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으니… 바비큐 트럭이었습니다. 어두운 저녁, 쨍한 화로 사이로 익어가는 목살이 있었습니다. 열선 주위로 균일하게 열을 쬐며 노릇노릇 구워지는 모습은 걸어가던 우리를 사로잡기에 모자람이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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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대신문
2023.04.20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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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설거지는 할 만한데 요리를 못 해 먹겠다”했고 나는 그 발언에 정확히 반대로 공감했다. “요리를 하면 음식이 생기잖아, 그런데 설거지를 하면… 무엇도 생기질 않잖아. 그래서 싫어. 재미도, 성취감도 없고” 싫은 이유는 끝도 없이 이어지는데 내 입에서 나오는 문장 중에서 내 마음을 정말로 대변하는 것은 한 마디도 없었다. 화제가 전환되는 와중에도 남은 변론은 혀 위에서 쓴맛을 남긴다. 나는 어쩌다 설거지를 싫어하는 사람이 되었나. 그것은 숙제였다. 4월의 캠퍼스는 어떤 불행도 침입할 수 없는 별세계여서 나는 공연히 머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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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대신문
2023.04.20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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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 윤은성 결국 아무도 없는 장소를 생각해내지 못했다.역 근처 공원들은 모두 같아 보인다.내가 새를 배웠을 때.내가 새를 배웠을 때.내가 눈앞에서 떨어지는 새들을 배웠을 때. 그 너머에 펼쳐진 건 먼지 낀 공기 속의 양평동이었다. 평평하고 텅 빈 손. 회색의 널따란활엽수 잎.···결국, 이라는 말 다음 잠깐의 침묵이 근처에 있었다. 결국 캄캄한 트렁크가 집어삼키고 있는 것 이것은 나의 기억인가, 당신의 전망인가. 묻지 않으면 당신을 만나지 않으면얼굴 속 새들이 죽게 될 것 같다.또뛰어야 할 것이라고생각해.미용실 앞의 얼룩진 수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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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대신문
2023.03.03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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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귀 방귀. 인간의 생리현상 중 하나로 소화를 마치고 생성된 부산물들이 가스 형태로 항문을 통해 배출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방귀가 나오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만 현대사회는 무분별한 방귀배출을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으로 봅니다. 그래서 저 또한 조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예의에 어긋난 사람이 돼버리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오늘은 방귀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때는 약 2주 전. 제가 서울여행을 다녀와 집으로 돌아가던 중 발생한 일입니다. 기차를 일찍 예매해둔 덕에 대전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2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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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대신문
2023.03.03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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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기다리는 때에는 아직 봄이 아닌 모든 순간이 허송세월 같다. 여태 남아 있는 지난 해 미련과, 지키지 못한 새해 목표를 씻은 듯이 극복하겠다는 마음은 아침마다 의식처럼 그 날의 최고 온도를 찾아보게 한다. 2월의 공기에는 희망이 소문처럼 파다하다. 두꺼운 옷이 옷장으로 돌아가고 벚꽃이 피면 마법처럼 모든 것이 바뀔 것이라는 희망. 작금의 삶은 어딘가 잘못되었고 계절의 흐름만이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맹신. 심란하고 싶을 때는 생각을 하면 된다. 아무 생각이나 하면 그만이다. 세 단계 이상 생각하는 행위는 우울을 알리는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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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대신문
2023.03.03 1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