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람마다 생김새는 제각각입니다. 눈이 큰 사람, 콧구멍이 넓은 사람, 입술이 부각되는 사람 등 사람의 숫자만큼이나 생김새는 제각각이죠. 저는 오늘 제 생김새에 관한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때는 약 한 달 전. 본격적으로 학기가 시작되고 개강의 설렘에 온 캠퍼스가 들떠있던 때였습니다. 매일 열리는 술자리로 거리는 정신이 없었습니다. 캘린더에는 개강총회나 OT 따위로 꽉꽉 들어찼고 처음 보는 사람들은 서로 알아가기 바빴죠. 수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명 OT 주간이라고들 하더군요. 첫 주 차에는 으레 그렇듯이 진도를 나가기보다는 앞
참여
충대신문
2023.10.19 11:01
-
어떤 순간은 감각으로 기억된다. 마치 보이지 않는 신체 어느 구석에 무언가가 파편 조각처럼 박혀 있는 느낌이다. 인지하지 않고 살다가도 그 기억 언저리를 건드리면 불현듯 아픈 감각이 퍼져나가는 것이다. 이윽고 상처에 피가 올라오듯 조금씩 물이 차오른다. 때로 슬픔은 그렇게 밀려온다. 서울역 옥상정원에서 한참 도심을 내려다보았다. 시끄러운 도시 소음, 바삐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 정립된 질서가 나를 배제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등바등 버텨왔던 시간은 어쩌면 저 속으로 들어가려는 노력이었을지도 모른다. 길게만 느껴졌던 수험기간의 순간들
참여
충대신문
2023.10.19 11:00
-
-
-
-
여수침투작전 클리셰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말로 ‘전형적인 것’ 정도가 되겠네요. 첩보영화에선 지령을 내리는 수뇌부가 “자~ 선수 입장” 과 같은 말도 안 되는 대사를 치는 것도, 로맨스 영화에서는 부스스하던 주인공이 멀끔하게 차려입고 재회하는 것도, 스릴러에서는 제일 말 안 듣는 사람이 먼저 죽는 것도 다 일종의 클리셰입니다. 그렇다면 8월의 클리셰는 무엇일까요. 더운 날씨, 내리쬐는 태양. 다름 아닌 여름이죠. 그리고 여름하면? 바다를 떠올리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강이라고 대답하신 분들은 조용히 신문을 덮어주시기 바랍니다
참여
충대신문
2023.09.08 11:16
-
-
“꽃다운 스무 살이 반갑지 않았다.” 트라이비(Tri.be) 송선의 데뷔 과정이 담긴 동아일보 기획 기사 은 이렇게 시작한다. 송선은 연습생 5년 차에 스무 살을 맞이했다. 고등학교 졸업식에선 이미 데뷔해 유명해진 학생들이 포토월에 서서 기자들의 플래시 셔터를 받았다. 학교를 빛냈다며 공로상을 받는 그들을 단상 아래에서 바라보던 연습생의 감정은 어땠을까. 여전히 데뷔는 불투명했고 신인들의 나이는 갈수록 어려지기에, 스무 살은 반가울 수 없었을 것이다. 어려운 연습생 생활을 이겨내며 데뷔 조에 들어도 투자 자금이 확
참여
충대신문
2023.09.08 10:57
-
-
-
친애하는 언니 김희준 유채가 필 준비를 마쳤나봐 4월의 바람은 청록이었어 손가락으로 땅에 글씨를 썼던가 계절의 뼈를 그리는 중이라 했지 옷소매는 죽어버린 절기로 가득했고 빈틈으로 무엇을 키우는지 알 수 없었어 주머니에 넣은 꽃잎을 모른 체 했던 건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 박음질이 풀릴 때 알았지 실로 재봉된 마음이었다는 걸 의사는 누워 있으라 했지만 애초에 봄은 흐린 날로 머무는 때가 많았지 벚꽃과 유채가 엉킨 들판에 어린 엄마와 어린 언니가 있어 놀이기구가 안개 속에 숨어 있었던 거야 숨바꼭질을 좋아하던 언니가
참여
충대신문
2023.06.01 10:55
-
-
충남대학교 재학생 여러분이라면 다들 아시겠지만 전공, 입학전형을 막론하고 모두가 들어야하는 수업이 있습니다. 필수교양이라고도하죠. 그 중 하나가 대학영어입니다. 고학번 분들에게는 GLOBAL ENGLISH로 알려진 그 과목이죠. 보통은 나중에 변수가 생기는 걸 피하고자 1학년 1학기, 늦어도 2학년으로 넘어가는 계절학기 안에는 들어두는 게 일반적입니다. 네, 저는 좀 특이한 놈인가 봅니다. 대학영어는 시작부터 범상치 않았습니다. 지난 3월, 저는 첫 수업을 앞두고 긴장했습니다. 길을 잃었거든요. 대체 새내기도 아닌 20학번이 왜 길
참여
충대신문
2023.06.01 10:46
-
호감을 사려면 기억해야 한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그가 좋아하는 얼그레이 케이크를 사서 건네는 것은 마음을 전하는 지름길이다. 단축키를 외우기 위해 한동안 왼손을 허둥거려야 하는 것처럼, 다정하는 일은 마음에 인이 박이는 행위이다. 그리고 말썽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생한다. 습관을 형성할 때가 아니라 고쳐야 할 때. 너와 나는 너무 달라서 문제라는 말에 내가 공감하는 방식은 피그마와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를 동시에 사용하는 것이다. 알트와 컨트롤을 분간할 수 없게 될 때, 내 새끼손가락이 누르는 키가 내 의지를 벗어날
참여
충대신문
2023.06.01 10:44
-
-
-
저 봄 잡아라 김혜순 봄이 엄마를 데려간다 나는 여기 있는데봄이 엄마를 데리고 간다 봄이 오면 가만히 서 있던 나무들에게도 이름이 생긴다 꽃이 피면 그 나무의 이름을 불러준다... 엄마의 소녀 적 소녀들은 쌍쌍으로 찻집에 들어가고애도는 죽음보다 먼저 태어나꽃 피는 대궐의 문을 여는데봄은 죽음의 계절흰 눈 위의 흰곰을 병 속에 밀봉하는 계절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는 게 있다봄이 꽃들로 만든 포대기처럼 엄마를 데려간다저 봄 잡아라나는 눈을 가린 사람처럼 두 손을 휘젓는다...꽃 피면 안 돼그 누구도 안 돼주문을 외운다 시집 『지
참여
충대신문
2023.04.20 10:17
-
1. 그런 거 안 팔아유 때는 약 4년 전, 저는 친구와 붕어빵을 나눠 먹으며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저녁 시간이 되었음에도 끼니는 때우지 못했고 손에 들린 건 붕어빵뿐이었습니다. 붕어빵을 비하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나 혈기 왕성한 20대 청년 두 명을 배불리 먹이기엔 붕어빵은 어딘가 모자란 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으니… 바비큐 트럭이었습니다. 어두운 저녁, 쨍한 화로 사이로 익어가는 목살이 있었습니다. 열선 주위로 균일하게 열을 쬐며 노릇노릇 구워지는 모습은 걸어가던 우리를 사로잡기에 모자람이 없
참여
충대신문
2023.04.20 1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