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에는 더 멀리 돌아가는 버스를 타는 게 좋았다 오늘 학교로 향하는 재희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졸업을 목전에 앞둔 2019년, 뭐라도 성취를 해보고 싶어서 도전했던 마케팅 공모전이었다. 물론 준비 과정이 녹록치만은 않았다. 일단 하나의 광고 작품을 만들어내는 게 쉽지 않은 일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그렇게 힘을 들여서 만든 것이건만 왠지 어디서 본 것만 같은, 참신함이 부족한 작품만 만들어지는 것이 그녀를 답답하게 했다. 삭제와 추가를 반복하며 한 달 동안 영상 작업을 계속했다. 결국 제출 기간 하루 전에 영상은 완성되었고
자크 랑시에르 『무지한 스승』 철학자들은 가끔 알 수 없는 소리를 한다. 철학자들이 던지는 아포리즘은 종종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우며 때론 반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특히 기존 가치체계에 길들여진 사람이나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무지한 스승이 참된 스승이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의 이 발화는 어떠한가. 자크 랑시에르의 책『무지한 스승』(양창렬 역, 궁리, 2015 개정판)은 프랑스의 석학 조제프 자코토가 벨기에에서 겪은 일화로부터 시작된다. 먼저 조제프 자코토라는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 아는 것이 필요
요즘 Re- 접두사가 붙은 영단어가 많이 보인다. 몇 개 예를 들어보면 리메이크, 리마스터, 리빌딩, 리부트, 이 단어들은 적어도 시작할 때만큼은 사람들에게 기대를 받는다. 예를 들어보면 드라마의 리메이크, 고전 게임의 리마스터, 명문 구단의 리빌딩, 시리즈 영화의 리부트. 새로움에 대한 열광일까, 아니면 기존의 흐름에 만족하지 못해서일까. 리- 가 붙게 되면 끝은 미약할지라도 시작은 창대한 기대를 받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물론 많은 기대를 끌었지만 결국은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문화 예술적인 분야에서는 원작 드라
봄길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길이 있다길이 끝나는 곳에서도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스스로 봄길이 되어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새들은 날아가 도아오지 않고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보라사랑이 끝나는 곳에서도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스스로 사랑이 되어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여러분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경험해보신 적이 있나요? 벌써 봄이 끝나갑니다. 사실 요즘 갑작스러운 더위에 5월인데도 벌써부터 여름이 온 것 같습니다. 봄과의 이별이 다가오는 오늘, 정호승의 ‘봄길’을 소개시켜
그 애의 눈이 초승달이 되기도 하고, 보름달이 되기도 하고드디어 재희는 궁동에 있는 자취방에 도착했다. 3평 남짓한 이 공간이지만 재희가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지켜오고 있는 자신만의 공간이다. 이 공간을 사수하기 위해서 그 동안 참 힘들었다. 문득 지난 4년 6개월 동안 분투해왔던 기억들이 떠올라 한 편으로는 자신이 대견하고 한 편으로는 안쓰러워졌다. 시윤과 만난 것은 한창 돈 문제로 힘들어 막 휴학을 했을 즈음이다. 식비나 생활비는 물론 집세와 전기세까지 다달이 내야했기 때문에 학업을 병행하기가 벅찬 상황이었다. 결국 6개월 동안
빗나감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다. 양궁에서도 중심에서 빗나가면 해설진이 안타까움을 표하고, 컴퓨터 게임에서도 MISS로 대표되는 빗나감이 오늘도 많은 게이머들의 분노를 이끌어 내는 중이다. 하다못해 쓰레기통에 던진 쓰레기가 가장자리를 경쾌하게 때리고 밖으로 퉁겨져 나오면 괜히 아쉽게 된다. 더욱이 우리 근처에서 찾아보자면 대덕캠퍼스 정문의 오거리는 신호등이 많다. 경우에 따라서는 여러 개의 건널목을 건너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런데 완전히 순서대로 도는 게 아니기에 순서가 오겠다 싶은 마음이 빗나가는 경우가
서시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걸어가야겠다.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이번에 소개해드릴 시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유명한 윤동주의 ‘서시’입니다. 사실, 본 시의 제목은 애초부터 없었습니다.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서문 격의 제목이 없는 시였는데, 사람들이 이 시를 서시라고 불렀고 후대에도 그냥 그렇게 불리게 된 것입니다. 또, 이 시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고 불러야 한
이윽고 4월이 되었고, 꽃이 피었다. 바람은 마치 감정들을 사포질하려는 듯 거칠게 불었다. 어린 시절부터 느끼고 모아왔던 감정들의 모서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갈 때 마다 이렇게 허무하게 무뎌져갔다. 안타까웠지만 한편으로 사람의 인생은 스무 살 어른이 될 때 까지 무언가를 쌓고 나머지 시간 동안 그 것이 부식되는 것을 지켜보거나 혹은 직접 무너뜨리는 걸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라고 재희는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이 시기의 사람들은 낮에는 봄바람에 나풀거리는 옷들을 입고 사진을 찍어대고 밤에는 벚꽃을 따라서 전등이 켜진 길을 걸으며 불꽃놀이를
요즘은 기상관련 뉴스로는 미세먼지가 제일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물론 겨울과 여름에 지분을 뺏긴 봄에게 (정확히는 늦겨울부터) 미세먼지는 달라붙어 미세먼지라는 씁쓸한 정체성을 달아주었다. 얄궂게도, 미세먼지도 공기를 타고 어디서든 날아오는 것이기에 기압의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시베리아 방향의 대륙성 고기압이 한반도에 영향을 끼치면 편서풍을 타고 날아오는 중국의 미세먼지는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시베리아’ 방향의 대륙성 고기압이기에, 우리나라의 삼한사온이라 불리던 봄철의 날씨는 안타깝게도 삼한사’미’가 되어버렸다. 미세먼지가
“오늘은 안 가면 안돼?” 가파른 언덕 위에 있던 작은 시립도서관이 있었다. 방학이면 매일아침 도서관을 향해 어머니의 손을 잡고 출근도장을 찍었다. 그 당시에는 너무나 싫었다. 늦잠을 자고 집에서 편한 티비를 보며 놀고 싶었다. 방학은 쉬라고 주는 시간인데 난 매일같이 점심을 먹기 전까지 도서관 열람실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지금에서야 생각하면 그런 어머니의 노력이 내가 책을 사랑하게 된 이유라고 생각된다. 처음에는 소설로 시작했던 나의 독서취향은 시간이 지나며 자기계발서로 흘러들어갔고 그 다음은 시집 그리고 수필로 흘러 들어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재희는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유 없이 막 웃고 싶었는데, 그렇다고 웃어버리면 눈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참 많은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좋은 인연들을 사소한 오해와 갈등, 자신 혹은 서로의 비겁한 이기심으로 잃었다는 것이 떠올라 슬퍼졌다. 스물다섯 살의 재희는 스물 한 살의 재희를 떠올렸다. “나를 사랑해? 난 너를 사랑해!” “나도 사랑해. 정말로. 진심이야.” 스물 한 살의 재희는 한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분명 옆에 있었지만 재희는 그가 곧 부셔져 사라질 것
#그대를 담는다는 건 평소 취미로 찍고 있는 사진을 통해 나눔을 실천하고 싶었다. 많은 고민 끝에 사람냄새가 나는 “그대를 담는다는 건“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싶다”고 늘 이야기하던 나, 이기에 나눔과 소통을 할 수 있는 일이면 언제든 앞장섰던 것 같다. 긴 시간이 흐르고 사진첩을 펴 보았을 때, 우리의 아름다운 순간을 떠올릴 수 있도록 기록해주는 것이 “그대를 담는다는 건” 프로젝트의 목적이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1년간 진행한 이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
그대를 사랑하는 마음 내 그대를 사랑한다고 해서당장 그러한 내 마음그대에게 알려줘야 한다고생각하지 않아요그저 멀리서 그댈바라만 볼 수밖에 없을지라도나는 그대를 사랑합니다.그대를 사랑하는 마음은온전히 나의 것그런 나날들이 있었음을그런 시들이 있었음을언젠가 그대에게고백할 날을 기다리겠어요. 김영환(국어국문·2)
늦은 시간에 굳이 영탑지에서 만나자는 게 생뚱맞았다. 하지만 그런 생뚱맞음이 있기에 더욱 그 애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졸업 한다고 이제 와서 사람이 바뀌거나 하면, 그거야말로 슬픈 일이 아닐까. 달빛이 펼친 흰 옷자락이 유유하게 수면을 가르며 지나갔다. 벚꽃 잎이 호수에 빠져 저들끼리 떼춤을 추며 흘러가고 있었다. 재희는 문득 4년 반 동안의 기억을 모두 모아 저 호수에 폭, 빠트리고 가야하나, 잠시 생각했다. 태워버리고 싶은 가슴 아픈 기억도 있었고 가장 소중한 곳에 영원히 품고 싶은 좋은 기억도 가득이었지만, 어쩐지 지금 와서
재레드 다이아몬드 외 『컬처 쇼크』, 2013.‘문화지휘자’라 불리는 존 브록만(John Brockman)이 만든 세상에서 가장 지적인 온라인 살롱 ‘엣지(www.edge.org)’. 매년 크리스마스에 브록만이 엣지에 질문을 던지면 세계적인 석학 700여명이 답을 준다. 그리고 이듬해가 되면 그 응답들이 모인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온다. 이른바 ‘베스트 오브 엣지’ 시리즈이다. 이 책은 엣지 시리즈의 두 번째 것으로, 각각의 분야에서 최첨단을 걷는 석학들이 새로운 ‘문화’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 21세기 문화에 대한
유식해지고 싶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전공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고, 레포트를 쓰고...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돼 바로 뻗는다. 예전에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는데, 요즘은 관심 가질 시간이 없다. 어쩌다 마음먹고 뉴스라도 틀면 모르는 용어들 투성이다. 경제가 어떻고, 정치가 어떻고. 앵커는 쉴 새 없이 떠드는데 머릿속에 들어와 박히는 게 없다. 종강을 맞아 친구들과 술을 먹다 시사 이슈 이야기라도 나오면 긴장부터 된다."야, 오늘 카풀 반대한다고 택시가 아예 없더라.
바람이 점점 차가워지고 있다. 그 만큼 한 해가 지나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할 시기가 다가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우리는 8월 그 뜨거웠던 나날들을 지나 1월 충대신문의 마지막 연재를 앞두고 있다. 우리의 소개와 충남대학교 법률센터, 충남대학교 인권센터, 여성긴급전화 1366, 충남대학교병원 해바라기센터까지 총 5번의 연재를 진행해 왔다. 시작은 미미했지만 하나하나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정하고 매듭을 지어나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던 모든 것들이 튼튼하게 이어져 법무부 법사랑 서
후배의 가족사진어느날 문득 전화가 왔다.“형 지금 집에 올라왔는데, 이제서 너무 보고 싶어요.”라고 무턱대고 뱉고는 그녀석은 하염없이 울었다.사랑하는 나의 교등학교 후배, 우연히 동아리 활동을 통해 알게 된 녀석은 항상 쾌활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 면, 물 불 가리지 않는 멋진 동생이다.심지어 자동차를 너무 사랑해 지방대학교에서 자신의 꿈을 찾아 서울 유명대학교로 재입학을 하며 모교에서는 영웅처럼 불리었다.겨울에는 스노우보드 강사를 하며 돈을 벌었고, 60일이 넘는 유럽여행을 홀로 기획하기도 했다.한번은 부모님 두 분과 다정하게
아무도 없는 교실에 앉아있었다. 밖에는 버려진 문제집이 산더미였다. 문제집이 태워지는 냄새가 났다. 이제 학교에서 할 일이 남지 않았다. 끝났다는 생각에 미치자 이름 모를 누군가가 떠올랐다. 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적었다. 공책을 쭉 찢어서 잘 보이도록 책상 서랍 한가운데에 접지 않고 넣었다. 그가 쪽지를 발견할 수 있을지, 아무도 보지도 않고 쪽지가 벼려질지도 모를 일이지만 설레었다. 학교에서 느낄 일이 없던 감정이었다. 친구는 분명 내가 고등학교 시절을 잘 보냈다고 했다. 내 기억으로 학교는 끔찍한 곳이었다. 교사는 여학생들
태생부터 문과다. 과학적 지식에는 한 번도 흥미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과학은 늘 어려웠고 신비로웠으므로. 어쩌다 보니 희한한 영상 하나를 접했다. 공학하는 사람들 여러 명이 모여서 ‘어벤져스-인피니티 워’에 나오는 타노스 장갑을 만드는 영상이었다. “아니, 이걸 진짜 만든단 말이야?” 처음으로 공학이 멋있어 보였다. 아아, 꿈에서만 그리던 그 타노스 건틀렛을... 그 전까지만해도 공대생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만은 않았다. 여자라면 '공대 아름이' , 남자라면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이처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학